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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나의 교회론과 제자훈련은 엇박자가 된 것 같다
	
	

·날짜 : 2009년 10월 9일
·장소 : 국제제자훈련원 원장실
·진행 : 김명호 목사(국제제자훈련원 대표)
·정리 : 우은진 편집장(월간 <디사이플>)
·사진 : 박정현(CTK)

어떻게 하면 교인들이 모이고, 교회가 빨리 성장할까를 고민하는 한국 교회 실정에서 교회론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다면 무슨 케케묵은 이야기냐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한국 교회 목회자 대부분이 다녀갔다는 CAL세미나에서 참석자들이 가장 많이 하는 소감 내용은 “교회론과 목회철학이 이렇게 중요한 줄 이제야 비로소 깨닫게 됐다”는 말이다. 그동안 어디서도 체계적으로 교회론에 대해 배운 적도 없었고, 심각하게 고민한 적도 없다는 얘기다. 건강한 교회론은 건강한 교회로 자라게 하는 데 필수적인 밑그림을 제공한다. 제자훈련의 개척자인 옥한흠 목사에게서 지금 이 시대에 교회론이 왜 중요하며, 지금과 같은 혼돈의 시대에 건강한 교회론을 정립하는 게 왜 시급하게 필요한지 들어보았다. <편집자 주>


교회론은 긴 시간 씨름하며 나온 영적 경지다
한국 교회에서 옥한흠 목사님 하면, 제자훈련과 CAL세미나가 하나의 트레이드마크처럼 떠오릅니다. 동시에 CAL세미나에서 ‘제자도’와 함께 ‘교회론’은 핵심 강의 주제이기도 합니다. 지난 30년 동안 교회 현장에서 사역하시면서 여러 가지 목회방법에 대해 고민하셨을 텐데, 그 많은 것 중에 왜 하필 교회론이 목사님 사역의 핵심 주제로 떠올랐습니까?
처음에는 교회론에 대한 생각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교회론 자체가 당시 교회 현장에서 사역하는 목회자들에게 고민할 이슈가 아니었고, 이 주제로 고민하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단지 제가 맡았던 대학부를 부흥시켜야 한다는 현실적인 문제와 씨름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제자훈련을 도입하게 됐고, 시간이 흘러 얻게 된 열매가 바로 교회론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제자훈련의 신학적인 기초를 가지고 씨름해야 한다는 필요를 전혀 느끼지 않았습니다. 당시 제가 한 제자훈련은 대학생들을 성경공부 시켜 변화되게 하고, 대학부가 부흥되어 열매가 나타나도록 좋은 교재를 선택하고, 소그룹의 테크닉을 익히는 정도에 집중했을 뿐입니다.
그처럼 아무것도 모른 채 제자훈련을 진행해오던 저에게 하나님께서 “목회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이 바로 이것이다”라고 눈을 열어주신 보물과 같은 목회의 핵심 내용이 바로 교회론이었습니다.
세계적인 명지휘자인 정명훈 씨가 한 말이 기억납니다. 그는 지휘자로서 테크닉을 배우거나 곡을 어느 정도 습득한다는 것은 참 쉬운 일이지만 어떤 경지를 터득하는 것은 30년이 걸렸다고 고백합니다. 저 역시 비슷한 얘기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제자훈련의 테크닉이나 프로그램, 교재를 정리하고 발전시키는 것은 참 쉬운 일입니다. 그러나 제자훈련 속에 숨어있는 신학적인 진리 즉 그것이 교회론인데, 그것을 터득하는 데는 거의 30년 가까이 걸렸습니다.
제 자신이 CAL세미나를 시작할 때 『평신도를 깨운다』라는 책을 쓰면서 교회론을 갖고 나왔지만 그때조차도 그 깊은 경지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 후 20년 넘게 CAL세미나를 진행하면서 교회론은 제 안에서 많은 발전을 거듭하게 됐습니다. ‘교회론의 경지가 바로 여기에 있구나’를 확신하는 자리에까지 이르게 됐던 것입니다. 교회론은 긴 시간 동안 목회와 씨름하면서 하나님께서 제 눈을 열어주신 하나의 영적 경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CAL세미나 때 교회론을 강의하시면서 “목회자는 날마다 교회가 무엇인지 물어야 한다”고 하셨는데, 목사님에게 있어서 교회론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저에게 있어서 교회론은 목회자와 교회가 사는 생명과도 같습니다. 교회론이 왜 생명과 같으냐고 물으면 목회가 살고 죽는 것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즉, 성도들을 영적으로 죽이느냐 살리느냐를 판가름하게 됩니다. 그래서 교회가 무엇이냐를 놓고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는 목회자는 진정한 목회자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솔로몬 앞에 두 여인이 나와서 아이 한 명을 놓고 서로 자기 아이라고 주장했지만, 진짜 어미는 자신의 욕심을 버리고 자기 아이를 살리려고 했고, 가짜 엄마는 아이를 죽여서라도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 했습니다.
교회론을 가지고 계속 고민하는 목회자는 자기 자신을 죽이는 자입니다. 자신이 희생되어도 양떼는 살려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성도를 향해 어미의 마음을 가진 자입니다. 그가 바로 진짜 목회자입니다. 교회가 무엇인지 고민하지 않고 교회 사이즈를 가지고 떠벌리며 교회 밖으로 바쁘게 돌아다니는 목회자는 언젠가 자신도 모르게 양떼를 버릴 수 있는 사람이 아닐까 싶습니다. 단정하긴 어렵지만 가짜 목회자가 될 확률이 높다는 말입니다. 목회자는 항상 교회가 무엇인가를 물어야 합니다. 당신이 진짜 목회자가 되고 싶다면 교회가 무엇인가를 놓고 항상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영적 어미요, 교회 지도자의 참 모습입니다.

교회론에 부합하지 않은 교회 사이즈
목사님께서 지난 30년 가까이 목회를 해오시면서 붙잡았던 교회론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저의 교회론의 핵심은 점진적으로 발전해 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교회론은 범위가 넓습니다. 교회론을 논할 때 무엇이 교회론이냐고 하면 어떤 사람은 성례론이다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조직론이나 예배론을 거론합니다. 또 행정체제, 리더십, 영성 등 어느 한 가지를 붙잡고 교회론이라고 말하는데, 여러 가지 분야를 가지고 묶어서 다루려면 교회론의 범위가 넓어지게 됩니다.
제가 관심을 갖는 교회론은 어떤 영역이나 분야가 아니고, 교회의 본질과 연결된 핵심적인 부분입니다. 즉, 교회의 주체가 누구인가 하는 것입니다. 교역자인가 아니면 평신도인가? 저는 교회의 주체가 평신도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성경적이라고 생각했고, 교회 주체인 평신도를 위해 목회자가 어떤 사역을 우선에 두어야 하는지, 성도들에게 주어진 그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영광스러운 신분과 소명이 무엇인지, 그것을 목회자로서 어떻게 극대화시켜줄 수 있는지 등 이런 것을 고민하는 것이 저의 교회론의 중심이 돼 버렸습니다.
이것은 종교 개혁의 중심사상이기도 합니다. 만인 제사장직이 바로 그것인데, 교회 주체가 평신도라는 것을 강조하다 보니 일종의 기독교 민주주의가 나오게 됐습니다. 최근 앨리스터 맥그래스가 쓴 『기독교, 그 위험한 사상의 역사』(도서출판 국제제자훈련원)에서도 지적을 했지만, 누구나 다 성경을 해석할 권리가 있습니다. 이것은 일종의 기독교 민주주의인데, 전통적인 기성세대 지도자들에게는 위협적인 도전이 되기도 합니다.
오늘날도 평신도를 깨운다거나 평신도 한 명 한 명이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사도성을 계승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전통적인 생각을 가진 목회자들에게는 굉장히 위협적이고 위험한 사상이 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들의 입장에서는 강한 도전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런 부분을 성경을 통해서 신학적으로 확신했고, 이것을 살려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평신도를 중심으로 목회를 하다 보니 일반 목회와는 차이가 생겼습니다. 전통 목회는 평신도가 동원(動員)의 대상입니다. 그러나 저는 평신도를 하나님의 손에 쓰임 받는 주체, 동역(同役)의 대상으로 보았습니다. 평신도를 교회의 실력을 대변하는 숫자나 부흥의 도구로 보지 않았습니다. 한 사람도 좋고 열 사람도 좋았습니다. 한 사람이 바로 설 때 이것이 바로 교회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한국 교회로부터 돌팔매질을 받을 수 있는 위험성이 있었는데, 한국 교회가 저의 생각과 사고를 관심 있게 봐주었습니다. 변두리로 돌아다니면서 비판하고 빈정거리는 사람은 있었어도, 다행히 정면에서 신학적 이론으로 공격하거나 목회의 구체적인 내용으로 비판한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그리고 한국 교회에 소망이 있다고 생각하며, 계속해서 제자훈련이 세계 교회로까지 퍼져나갈 수 있었던 풍토가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이제 제자훈련은 한국 교회 안팎에서 확고하게 자리를 잡고 어느 정도의 경지에 올라와 있는 실정입니다.
그러나 은퇴 후 저는 제 목회가 자체적으로 자기모순을 갖고 있지 않았나 하는 우려를 합니다. 왜냐하면 교회를 너무 키워버렸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제 교회론에 부합한 교회는 너무 비대해져 버리면 그 정신을 살리기가 굉장히 어렵다는 것은 숨길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제 목회가 교회론과 제자훈련이 엇박자를 이룬 것 같습니다. 한 사람을 그리스도의 온전한 제자로 세우는 것은, 양이 많아져 버리면 그것을 성취할 수 있는 확률이 그만큼 떨어져 버리게 됩니다. 제가 은퇴할 때 사랑의교회가 주일 출석 장년 교인수 2만 3천명, 전체 등록 교인수 5만 명, 벌써 너무 커져 버렸습니다.
저의 교회론에 일치하는 목회를 위해서 적정 수준의 교회 사이즈를 유지했으면 싶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안했느냐고 묻는다면, 인위적으로 교인수를 유지하고 관리하는 것은 교회의 성격과 맞지 않는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씨를 뿌려서 최대한의 수확을 거두는 것은 영적 농사인 목회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위적으로 교회 사이즈를 획일화해서 성장을 억제하는 것은 성경적이라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교인이 2천 명이 넘어가면 제 교회론에 일치하지 않는 목회 즉, 잘못하면 속빈 강정이 될 수 있는 위험성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좋은 지도자를 세워 독립시켜 사랑의교회와 같은 교회론을 가진 제2, 제3의 사랑의교회를 뿌리내리도록 했으면, 지금과 같이 실패했다는 감정을 갖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지금 사랑의교회는 어찌 보면 상당히 위험한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제자훈련의 선두주자로서 교회론으로 볼 때, 그 정신을 잃어버릴 확률이 높아졌습니다. 또 교회론의 본질에서도 위선자적인 입장에 빠질 수 있어 고민이 됩니다. 후임자도 같은 고민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담임목사 한 사람이 아무리 조직을 튼튼히 해서 자신과 같은 분신 부교역자 수백 명과 함께 사역을 한다고 해도 규모가 너무 비대해 버리면 한계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짜, 쭉정이가 나올 수 있고 본질이 흐려질 가능성이 크다는 말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사랑의교회가 초대형화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제가 주장했던 것과 실제 현실 목회에는 차이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이 되기 위해 일부러 노력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다고 했는데, 교회가 저절로 자라 버렸던 것입니다. 그렇다고 교회를 잘 지어서 교인들이 편안했다면 모르겠는데, 사랑의교회처럼 시설이 불편한 교회도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양적으로 너무 비대해져 버렸습니다. 교회론대로 목회했다면 다른 방향으로 나타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즉, 사랑의교회라는 개 교회가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가 성장하도록 좀 더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목회를 했어야 했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것 같아 하나님 앞에 죄송스럽습니다.

교회가 커져도 한사람 철학을 놓치지 말라
목사님께서는 어떻게 하면 지상의 교회가 본질적인 교회의 모습으로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교회가 초대형화 되어도 초창기 사랑의교회에 1, 2천 명 모였을 때처럼 제자훈련을 통해 알찬 제자들이 나온다면 금상첨화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은혜와 능력을 계속해서 사랑의교회가 지속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아마 방법은 있어도 실현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그래서 위기의식을 느낍니다.
미국 교회의 경우, 출석인원 2천 명만 넘어도 대형 교회라고 하는데, 이상하게 한국 교회 안에 제자훈련을 잘하는 교회들은 이미 그 수를 넘어 대형화되어 가고 있는 실정입니다. 제자훈련으로 성장한 교회 가운데 등록 교인이 5천 명을 넘어가는 교회들만 따져도 10여 곳이 훨씬 넘는 것 같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점이 있습니다. 즉, 제자훈련을 착실하게 하고 있는 교회 중에는 괄목할 만큼 성장하는 교회들이 많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앞으로 한국 교회를 위해서 의미 있는 연구과제가 될 것이라고 봅니다. 평신도를 그리스도의 몸 된 주체로 잘 세워, 작아 보여도 큰 강국을 이루는 역동적인 제자를 만들면, 적당히 억지로 자라는 것이 아니라 기적적으로 자란다는 점을 주목해야 합니다. 겨자씨가 큰 나무가 되듯이 건전한 목회를 하는 교회가 양적으로 크게 자라는 것을 비판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제자훈련하는 교회가 분수에 지나친 성장의 덫에 걸려서 결과적으로 허약한 교회가 된다는 것은 우리가 고민해야 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이 고민은 제가 풀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후배들이 풀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목회자는 날마다 죽어야 한다
목사님께서는 지금의 사랑의교회 즉, 초대형 교회가 되었어도 한사람 철학을 놓지 않는 비결과 그 문제를 해결할 대안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가장 중요한 대안은 목회자가 날마다 죽는 것입니다. 교회가 커지면 목회자도 사람이니까 잘못되기 쉽습니다. 사람들은 전부 외형을 가지고 평가합니다. 교회가 커지면 목회자가 대단한 인물로 부각되고, 그에게 여러 가지 요구를 하게 됩니다. 사방에서 끌어당깁니다. 적당히 거절하지 못하면 정신없이 자기 과시하는 데 애쓰게 됩니다. 양떼를 돌보고 그리스도의 제자로 세우고 설교준비를 하는 데 집중해야 하는데, 생명을 짜는 설교 준비가 아닌 설교를 위한 설교 준비를 하게 됩니다. 그러면 사람은 없어지고 건물만 남는 교회가 됩니다.
교회가 병들지 않기 위해서는 목회자가 날마다 죽어야 합니다. 설교 준비에 죽어야 하고, 밖으로부터의 유혹, 권력으로부터의 유혹, 인기에의 유혹을 철저히 끊고 자기가 죽을 때, 교인들의 숫자가 많아져도 그것을 커버할 수 있는 만큼의 큰 품이 생기게 됩니다. 그 밑에서 공부하는 부교역자도 다 본받기 때문에 위험성이 크지 않게 됩니다.
초대형 교회 목회자는 그 자리를 순교의 자리로 여겨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자기 과시의 자리라고 생각하면 그 교회가 힘을 잃고 죽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입니다. 교회가 커질수록 목회자는 긴장해야 합니다. 목회자는 그 문제를 십자가에 못 박고, 극복해야 합니다.
기독교 역사를 보면 청교도들은 청렴결백하고 부지런해서 오늘날 서구 사회 선진국의 경제적 기초를 닦았습니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선조 때문에 번영을 누리게 된 다음 세대들은 영적으로 심각한 위기에 빠져 오늘날의 박물관 교회를 남기고 말았습니다. 이 사실은 양적 성장으로 만족하는 오늘의 교회들이 깊이 생각해야 될 경고라고 봅니다. 우리 세대는 살고 다음 세대는 죽이는 이런 비극이 재현되지 않도록 제자훈련으로 성공한 교회들이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십자가 앞에서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제자훈련에 성공한 교회를 두고 개교회주의에 빠졌다고 하는 비판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제자훈련을 하는 목회자로서 교회론에 충실하게 목회하려고 하면 한 가지 문제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너무 자기 교회 사역에 몰입하게 돼서 다른 교회를 섬길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한국 교회 전체를 위해서 해야 할 역할을 제대로 못할 수가 있습니다. 제가 그랬습니다. 교회갱신을 위한 목회자협의회와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를 세워 뒤에서 한국 교회를 위해 나름대로 최소한의 역할을 감당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이를 위해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전적으로 뛰지는 못하고 측면 지원만 했을 뿐입니다. 1년에 수백 개 교회에서 부흥집회 요청이 들어왔지만 1년에 서너 개밖에 안 나갔습니다. 그래서 밖에서는 옥한흠 목사가 자기 교회밖에 모른다, 개교회주의자다, 굴만 파는 두더지 목회를 한다는 말을 많이 듣곤 했습니다. 그러나 몸에 병을 얻을 정도로 저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교회의 본질을 추구하려고 할 때, 방해요소가 많이 등장합니다. 의도하지 않는 교회 성장 외에 목회자가 진정한 교회의 모습을 추구하려고 할 때 방해되는 요소로는 무엇이 있습니까?
방해되는 요소가 많습니다. 그것은 영적 싸움입니다. 첫 번째 방해요소는 목회자가 욕심이 지나쳐서 양떼들의 영적 상태를 제대로 읽지 못할 때 생깁니다. 목회자는 목표가 뚜렷하고 의욕이 있어서 빨리 사람들을 키워 예수의 제자답게 소명자로 키우고 싶은데 양떼들은 따라올 힘이 없습니다. 또 목회자가 지나치게 힘을 쓰다가 스스로 다치는 경우도 잘못된 것입니다. 나중에 잘못되면 양떼들이 내 말을 안 들어서 그렇다는 핑계를 댑니다.
우리는 창세기 33장의 야곱과 에서가 화해한 장면에서 에서가 야곱에게 같이 떠나자고 제안했을 때, “내 양떼가 너무 많고 아직 어려서 양떼들의 걸음대로 천천히 가야 한다”고 말한 야곱의 자세를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균형 잡힌 제자훈련 목회자의 자세, 이것은 참으로 말하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막상 실천하기는 어려운 게 현실입니다. 그래서 실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두 번째 방해요소는 제자훈련을 잘하려고 하면 쓴 뿌리와 같은 사람이 나온다는 점입니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자신도 모르게 마귀의 조종을 받아서 방해하는 사람을 어떻게 인내하면서 제자훈련에 몸담을 수 있도록 하느냐는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게 합니다. 그래서 목회자에게는 각별한 기도와 인내, 지혜가 필요합니다.
세 번째 방해요소는 제자훈련을 열심히 하는 데 교회가 성장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교역자들의 피를 말리는 고통이 됩니다. 제자훈련과 관계없는 목회를 하는 교회들은 계속 성장하는데, 한 사람 한 사람을 그리스도의 제자로 세우겠다는 열정으로 희생하는 교회는 성장이 더딥니다. 목회자가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느냐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실제로 교회 현장에서 전체 성도들과 함께 목사님의 교회론에 대해 어떻게 나누셨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생각보다 나누지 못한 사람입니다. 설교를 봐도 제자훈련을 가지고 시리즈로 설교했다든지, 자주 제자훈련을 강조했다든지 하는 내용은 제 설교 내용 가운데 거의 없습니다. 제가 선택한 방법은 내가 어떤 목회자냐를 보고 그것이 이미지화될 수 있도록 행동하고 목회하고 보여줬을 뿐입니다. 이것이 더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의 가치관이 자기도 모르게 형성되는 방법은 말도 중요하지만 그를 계속 만나고 보면서 그 사람을 통해서 얼마큼 영향을 받느냐에 따라 좌우됩니다. 제 경우가 바로 이런 경우였지 않나 싶습니다. 제자훈련에 대한 나팔을 많이 불지 않아도 옥한흠 목사 하면 제자훈련이 딱 떠오르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저래야 된다고 마음에 잡히고, 설명하지 않고 말하지 않지만 보고 들은 게 있지 않나 짐작됩니다. 제자훈련 문화의 중심에 목회자가 있으면 특별한 액션이나 구호가 없어도 성도들은 따라오게 되어 있고, 그들의 마음속에 제자훈련에 대한 신념과 확신이 서게 됩니다.
초창기 제 설교를 들으면 제자훈련으로 깨어난 평신도 천 명만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던 말이 있는데, 그 말은 다른 뜻으로 했던 말이 아닙니다. 같이 뛰는 평신도 지도자들이 그 정도 숫자만 되면 못할 것이 무엇이겠는가, 하나님의 일을 하는 데 있어서 두려울 것이 무엇이겠나 하는 목회비전을 담고 했던 말이지 복선을 깔고 했던 말은 아닙니다.

시대가 변해도 제자 삼는 사역을 계속하라
포스트모던시대에 교회가 계속 새로운 것들을 시도하고, 교회의 모습도 점점 달라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시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교회가 붙잡아야 할 기준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그것은 예수님의 명령을 따르고, 제자를 만드는 사역을 계속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원하는 사람은 자기를 닮은 작은 예수입니다. 한국 교회 성도들이 작은 예수로서의 모습만 갖고 있다면 어떤 시대라도 극복할 수 있습니다. 목회가 어렵다고 본질을 잊고 이런 프로그램, 저런 찬양으로 자주 바꾸고 설교까지도 변용시키려 합니다. 물론 시대를 따라서 변화가 필요한 것은 따라가야 합니다. 목회에 가변적인 요소가 있으나 본질은 바뀌지 않습니다.
물론, 목회 안에도 바뀌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멜로디를 듣는 청중의 귀가 완전히 달라졌는데, 계속 19세기 찬송가를 고집하는 것이나 중세기 시편 가사가 아니면 절대 찬송가 가사를 쓰지 못하게 한다든지 하는 고지식한 자세는 지양해야 합니다. 100년 전처럼 교회건물 양식이 꼭 종탑 2개를 세워야 한다는 식의 사고를 계속 고집하는 것도 세상 사람들이 교회에 접근하는 데 장애가 됩니다. 악기, 예배순서, 성경공부, 교회 디자인, 주일학교 시스템 등 바꿀 것은 바꿔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원하시는 목회는 예수님의 제자를 만드는 것인데, 이 본질에서 벗어나는 일을 해서는 안 됩니다. 가변적인 것을 너무 지나치게 강조하고, 또 그것을 사람들에게 과시하다 보니 본질을 잃어버리는 실수를 저지르게 됩니다. 그래서 막상 교회 안에 가보면 잔칫상은 요란한데 사람이 없습니다. 저는 제자훈련에 입각한 교회론을 제대로만 회복할 수 있는 목회자만 나온다면 한국 교회가 지금의 위기를 잘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도들을 훈련시킬 때 오랜 시간을 붙잡아놓으면 지쳐서 듣지 않는다며 되도록 쉽게, 성경 말씀보다는 삶을 나누는 부분에 초점을 맞추려는 교회들이 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너무 피상적으로 성경을 가르치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이런 현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런 훈련이나 프로그램은 얼마 지나지 않아 뻔한 결과로 나타날 것입니다. 그런 목회방법은 임시방편적인 처방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것이 바른 길인지 아닌지 분별하지 못하는 목회자는 한심합니다. 성경에 비추어볼 때, 길게 하든 짧게 하든, 눈물이 있든 없든 말씀을 경시하는 풍조는 처음부터 발을 잘못 디디는 것과 같습니다. 성경과 거리가 먼 이야기입니다.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적용한다는 것은 그 목회자가 한심한 것입니다. 몇 년 지나지 않아서 그 교회가 영적으로 쇠약해진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하고 있는 제자훈련만이 완벽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도 잘못된 것은 수정하고 개선해야 하며, 부족한 부분은 좀 더 연구해야 합니다. 그러나 중심은 바르게 가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왜냐하면 목표가 분명하고, 성경적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부인하면 성경 전체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그것만 제대로 고수하고 나간다면 당장 열매가 잘 보이지 않더라도 확실한 결과를 기대할 수 있게 됩니다.

마음을 비우고 목회하라
일반적인 목회현장을 보면 경쟁이 치열합니다. 어떻게 하면 교인들의 숫자를 늘리고 살아남을까 신경쓰다 보니, 교회론 자체보다는 교회 부흥 등 부수적인 것에 관심을 쏟는 것이 더 일반적인 현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교회론을 제대로 정립하지 못하면, 한국 교회에 어떤 폐해가 오게 될지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솔직히 지금 교회론을 가지고 고민하는 목회자가 몇 명이나 될까 의심스럽습니다. 교회론이 관심의 대상이나 될까 의문입니다. 현재 한국 교회는 교회 부흥만이 우상이 되어버렸습니다. 앞으로 영적인 혼란이 일어날 가능성이 참 많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교회 부흥만 시킨 사람이 승리하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획일적으로 대답하기는 어렵지만, 진짜 진실한 주의 종들이 하는 사역에는 열매가 없는 경우가 너무 많고, 우리가 보기에 신실하지 못한 사람들이 하는 사역에는 너무 화려한 열매들이 많이 나타납니다. 이게 세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뭐라고 단정해서 말할 수는 없습니다.
바라는 것은 할 수 있다면 정직한 성장을 하는 건강한 교회가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점입니다. 제자훈련에 최선을 다했지만 성장하지 않았다면 거기에도 하나님의 뜻이 있고 축복이 있다는 점을 믿어야 합니다. 제자훈련만 가지고는 사람을 모을 수가 없습니다. 여러 가지 변수가 작용을 하는데, 아무리 제자훈련을 잘 시켜도 설교가 따라가지 못하면 성장하지 않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또 신실하게 목회해도 너무 외진 골목 끝에 있어서 자동차 하나 제대로 지나가지 못하는 악조건에서는 교회가 부흥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경우들은 어쩔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좋은 위치에 돈을 투자해서 교회를 짓고, 시설에 투자하면 알곡들도 모이지만 쭉정이들도 모인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 성장을 놓고, 목회의 진위를 가리는 것은 위험합니다. 정말 신실하고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사역자들은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고 있는 특수 목회자나 선교사들입니다. 세상에서 상을 많이 받은 사람은 하늘나라에서 상이 없습니다.
아무리 경쟁이 치열해도 숫자를 가지고 이전투구 하듯 씨름하는 목회는 진정한 목회자의 자세가 아닙니다. 내가 포기하면 내 마음에 평안이 오고, 내가 포기한 만큼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십니다. 인간적인 경쟁심이 싹튼 곳에서는 은혜가 사라집니다. 제자훈련 하는 교회와 목회자가 소리 없이 작은 공동체를 놓고 날마다 죽으며 헌신한다면, 오히려 제자훈련이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교회가 그렇게 가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한국 교회가 악순환의 역사를 반복하는 것을 보면, 한때 수적으로 부흥한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과거 영국의 대형 교회들이 지금은 이슬람 교회에 건물을 팔아넘기고 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목회철학을 가지고 대처했더라면 그들이 경험한 기회가 호기였을 텐데,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영국 교회는 위기를 맞았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시기가 어떤 면에서는 오히려 다음 세대를 불행하게 만드는 좋지 못한 때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한국 교회도 그렇게 될 위험성이 많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교회의 진정한 본질을 추구하기 위해 오늘도 고군분투하고 있는 후배 목회자들에게 마음속의 메시지를 전해주셨으면 합니다.
마음을 비우고 목회하라 말하고 싶습니다. 주님께서는 가난한 자에게 천국이 저희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마음을 비우고 목회하면 주님이 주시는 분량대로 최선을 다한 후 만족하고 기뻐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면 그 목회는 초라하지 않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마음을 비우지 못한 목회자는 제자훈련을 길게 하기가 어렵습니다. 날마다 죽는 연습을 하지 않는 목회자는 제자훈련을 하기 어렵습니다. 마음을 비우고 날마다 죽고 최선을 다한 후, 그 결과는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그 교회를 통해서 다음 세대가 어떤 변화를 맛볼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입니다. 달동네 교회라도 큰 인물이 배출되어 다음 세대의 역사를 책임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형 교회인데도 불구하고, 다음세대를 책임질 인물이 아무도 나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니 마음을 비우고 최선을 다하십시오. 오직 목회의 결과는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디사이플/ 2009. 11.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