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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5. ‘그리스도 닮은 평신도’ 세상에 세우고 돌아가다… 옥한흠 목사의 목회 여정

2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옥한흠 사랑의교회 원로목사의 72년 인생은 ‘제자훈련’과 ‘교회갱신’으로 축약할 수 있다. 이것은 예수께서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치는 수준을 넘어 말씀 그대로 지키게 하는 훈련이었고, 성도와 교회가 그리스도의 제자이자 공동체로서 세상을 변혁시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증조부 때부터 예수를 받아들인 독실한 가정에서 자라난 옥 목사는 1972년 목사안수를 받고 한국네비게이토선교회와 한국대학생선교회의 선교자료와 방법을 연구해 청년 부흥을 경험했다. 그는 기존 교회가 강조했던 교리 대신 복음을, 지도자 중심에서 구성원 중심으로, 대그룹에서 소그룹 중심으로, 행사 위주에서 양육 위주로 훈련시켰다. 제자훈련에 몰입한 그는 유학을 떠나기 전날까지 제자훈련을 진행했고 다음날 가족들과 간단한 인사만 하고 떠날 정도였다.

38세에 시작한 미국 유학생활에서 그는 제자훈련의 신학적 토대를 탄탄하게 구축했다. 미국 네비게이토 본부에서 머물며 훈련 자료를 수집하고 제자훈련을 현장에 접목한 교회를 찾아다녔다. 석사학위 논문도 제자훈련에 관한 것이었다.

옥 목사는 1978년 미국에서 돌아와 은평교회의 도움으로 서울 강남에서 교회를 개척했다. 그는 대부분의 교회가 채택한 부흥회나 심방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당장에 아무런 효과가 보이지 않는 제자훈련을 택했다. 82년 출석성도가 250명으로 늘어났고 85년 1200명의 성도에 이르자 현재의 서울 서초동 교회를 지었다. 이후 성도들이 급격하게 늘어났고 은퇴 시에는 3만명에 이르렀다.

옥 목사는 한국교회가 당면한 위기상황 앞에서 선지자 예레미야의 심정으로 바른 목회철학의 정립, 소명자로서의 교회, 교회의 사도성, 제자도를 외쳐왔다. 이런 배경에서 96년 교회갱신을위한목회자협의회와 98년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가 창립된 것이다. 그는 2003년 65세의 나이에 ‘교회가 목사와 함께 늙으면 안 된다’는 신념으로 오정현 목사에게 성공적으로 리더십을 이양하고 조기 은퇴했다. 옥 목사는 은퇴 이후에도 국제제자훈련원장을 맡아 한국교회의 영적 멘토로 활동했다.

그렇다고 그가 순탄한 길만을 걸은 건 아니다. 군대 복무시절부터 폐결핵에 걸려 5년간 투병생활을 했으며, 1989년 병으로 쓰러져 1년간 목회 활동을 쉬기도 했다. 은퇴한 이듬해 폐암수술을 했지만 재발해 최근까지 중환자실 신세를 져야만 했다.

거인은 영원한 천국을 향해 떠났지만 그의 카랑카랑한 목소리는 아직도 귓가에 남는다. “누가 한국 사람의 4분의 1이 기독교인이라고 자랑할 수 있는가!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교인도 자랑할 만한 그리스도인인가! 왜 이렇게 무력한 군중이 되고 말았는가! 오늘의 대한민국 교회가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지금까지 사장되어 개발되지 못했던 평신도들을 작은 목사로 만드는 것이다!”

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국민일보/ 2010. 9. 3